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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스토리

첫 출근

by krystal.kim 2021. 6. 30.

첫 출근-

첫 취업한 유치원은 30년 전통의 교회부설 유치원이었다.

후덕하고 인자하게 생기신 원장님과 금테 안경을 낀 깐깐함을 장착한 원감님, 외모에서 풍기는 카리스마로 말썽쟁이 다섯 살도 멈추게 하는 주임선생님과 5명의 담임선생님이 계셨다.

인턴으로 인사한 첫 날

교사다움을 보이기 위해 준비한 핑크베이지 정장과 옅은 화장에 똑 단발머리로 인사를 했다.

너무 떨리고 긴장되어 계속 어색한 미소로 있었다.

첫날이라 유치원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조리실도 인사하고 인턴으로 근무하게 된 다섯 살 딸기 반에서 아이들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정신없는 하루가 지나가면서 원장님이 새로운 선생님이 왔으니 환영식을 하자고 하셨다. 유치원근처 삼계탕 집으로 갔다. 원장님께서 내 옆에 앉으셨다.

나의 왼손잡이가 책망이 될까봐 숟가락으로 계속 국물만 먹고 있었다.

앞에 계신 선생님께서 수진 쌤 삼계탕 안 좋아해요?’ 라고 물으셨다.

그냥 모른 척 해주시면 좋았을 텐데 굳이 말씀하셔서 모든 선생님들의 시선이 내게 꽂혔다. 이 후부터 그 선생님은 괜히 미워지고 멀리하게 되었다.

작은 목소리로제가 왼손잡이라 혹시라도하면서 말끝을 흐렸다.

원장님께서 들으시고 예전에는 왼손잡이라고 어른들이 혼내고 했지만 지금은 시대가 변해서 꼭 그렇지는 않으니까 편하게 식사해요, 다만 교실에서는 주의해주세요라고 하셨다.

그럼 교실에서 점심 먹을 때 나는 어쩌지? 포크를 사용해야 되나, 가위사용이 많은데 어쩌지 하는 여러 생각들로 환영식의 삼계탕 맛은 잊을 수 없다.

내게는 맹물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나름 고르고 고른 핑크베이지정장은 첫 출근과 함께 옷장에서 잠들어 있게 되었다.

퇴근하고 옷을 벗어서 정리하는데 딱딱한 무언가가 치마 엉덩이부분에서 만져졌다.

순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것이 타고 온 버스안의 사람들 표정도 떠오르고 집에 오는 길에 들린 마트안의 사람들도 생각이 나고 너무 부끄러웠다.

그 딱딱한 것의 정체는 밥 한 덩어리였다.

시간이 지나서 딱딱하게 굳어있었던 것이었다.

뿐만이 아니었다. 울면서 매달린 준우를 달래주면서 안아준 표시가 자켓 오른쪽 어깨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울면서 코를 흘려서 뿌옇게 자국이 남아 있었다.

이렇게 밥알이 묻어도 코가 묻어도 모를 만큼 정신없던 유치원 첫 출근의 시간은 나를 치마는 입지 않는 선생님으로 만들게 되었다.

평소처럼 청바지에 티셔츠 ,외투로 변신한 나는 다음날부터 행동에서 자유를 얻은 것 같았다.

밥알이 묻어도 콧물이 묻어도 마음은 편했다.

내 이름표를 단 앞치마를 입고 나는 다섯 살과 똑같은 수준으로 놀았다.

원장님과 선생님들께 잘 보이고 싶은 마음으로 큰 맘 먹고 산 핑크베이지 정장은 아마도 내가 그려온 선생님의 이미지였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섯 살과 함께 함께 지내는 내게 앞치마는 전투복과도 같은 의미이다.

앞치마 주머니 속에는 짠하고 나타나는 것이 많다. 그 속에서 나온 것들로 아이들이 원하는 것들을 자유롭게 만들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도라에몽의 주머니만큼 멋진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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