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한 박스-
출근 하는 길에 유치원으로 향하는 채소 아저씨의 꾸러미를 보았다.
특별한 반찬을 하지 않는데 아저씨의 리어카에는 각종 야채와 부재료들이 많았다.
그 중에서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감자 한 박스였다.
내가 모르는 행사가 있나 하고 별 생각 없이 유치원에 출근했다.
담임선생님께 여쭤봤다. ‘오늘 무슨 행사 있나요? ’
‘아, 수진 쌤 모르셨구나, 해마다 이맘때 쯤 되면 교회에서 동네 어르신들 모셔서
식사 대접하는 날인데, 아마 우리도 일찍 마치면 도와야 될 거에요.‘
라고 하셨다.
그때 까지만 해도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원장님께서 부르셨다. 원장님께서 왜 부르실까 긴장하면서 복도로 나갔는데
‘일손이 부족하니까 미안하지만 수진 쌤이 도와줄 수 있을까? ‘ 라고 하셨다.
분명 수업시간에 교실에 있지 말고 식사준비에 협조하라는 말인데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원장님의 말투를 따라해 보기도 하고 흉내내보기도 했었다.
조용하게 무게 있게 말씀하시고 인자하게 대하시는 모습에서 원장님의 표본이 되는 것 같았다.
열심히 가면을 자르던 나는 멈추고 각종 식재료가 있는 조리실로 향했다.
교회 관계자들께서 이미 작업 중이었는데 쭈뼛거리면서 나는 주변을 배회했다.
반장님 같은 분이 감자 한 박스를 내 앞에 내려놓으셨다. 숟가락과 함께
감자 칼을 주시지 않고 왜 숟가락을 주셨는지 아직도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숟가락으로 감자껍질을 벗겨달라고 하셨다. 감자 한 박스를~
어른들이 나누는 이야기에 나는 끼이지도 못한 채로 온 종일 감자 한 박스와
사투를 벌였다.
감자를 쥐어든 엄지와 검지사이는 퉁퉁 불어서 어느 게 감자인지 모를 만큼 껍질을
뒤집어썼고 쪼그리고 앉은 목욕탕 의자는 힘들어서 움직이는 내 방향대로 삐그덕
삐그덕 거렸다.
그렇게 한참동안 감자 한 박스를 정리하고 나니까 내 앞머리는 감자전분으로
하얗게 분칠을 하고 있었다.
내려앉은 감자전분으로 요리를 해도 되었을 지경이었다.
내 평생 그렇게 많은 감자를 숟가락하나로 해결하기는 처음이었고 지금까지도
그렇게 많은 감자껍질을 벗겨보지 못했다.
나는 감자껍질은 무조건 감자칼로 한다. 그것도 세라믹 감자 칼 제일 좋은 걸로~
한동안 감자요리는 먹지 않았다.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해 질려버린 감자는 내가
유치원에 근무하는 동안 잘 먹지 않던 음식들 중 하나에 들어갈지도모르겠다.
요즘 교사들에게 원 업무가 아닌 다른 일을 시키면 절대로 하지 않고 또
취업규칙 등에 맞지 않을뿐더러 시키지도 않는다.
1994년에는 그랬었다. 나의 첫 유치원선생님은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만
했었다. 선배선생님들도 다 해왔던 일이라고 했었기 때문에 나는 반항한번 하지
않고 주어진 감자를 인정사정 볼 것 없이 껍질제거임무를 완수해냈다.
어쩌면 의견조차 낼 엄두도 생각도 못했었다.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었던 나의 사회초년생시절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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