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을 하고 3개월이 지나는 어느 날이었다. 1994년 3월이었다.
아이들은 점심도시락을 먹고 나면 하원을 했다.
지금은 종일보육을 하고 있지만 그 때는 3시간 수업이었던 시절이었다.
유치원의 아이들은 각자 반찬을 도시락에 싸오고 유치원에서는 교실마다 밥솥을 두고 밥을 해야 했다. 그 밥은 고스란히 인턴인 내 몫이었다.
유치원에 출근을 하자마자 곧바로 해야 되는 업무 중에 밥솥에 밥을 안치는 일이었다.
분명 손등에 물을 맞추고 취사버튼을 누르고 밥을 안쳤다.
점심시간이 되어 밥솥의 뚜껑을 연 순간 나는 동작 그만이었다.
고슬고슬 되어있어야 되는 밥은 없고 손등에 맞춰진 그 상태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나는 어쩔 줄 몰라서 울먹이고 있었다.
나의 모습을 지켜보던 담임선생님께서 급하게 오셔서 나와 밥솥을 번갈아 살피시더니 아이들에게 웃으면서 새로운 게임을 제시하고 너무 재밌는 게임이니 게임을 한 다음에 점심을 먹는 게 어떻겠냐고 아이들과 의논을 하셨다.
팀을 나누고 아이들과 함께 놀이터로 나가셨다.
아무래도 내가 당황했기 때문에 스스로 해결하라는 뜻인 것 같았다.
얼른 눈치를 채고 밥솥의 상태를 보고 다시 콘센트에 플러그를 꽂고 취사버튼을 눌렀다.
그 덕분에 딸기반 친구들은 다른 반보다 늦은 시간에 하원을 했다.
지금처럼 CCTV가 있었더라면 확인이라도 해봤을 텐데 분명 취사버튼에 불이 켜진 것을 확인했는데 왜 꺼졌는지 지금도 알 수 없다.
순간 재치 있게 아이들과 게임을 하신 선생님께 나는 감동을 받았고 그 일로 한 번도 질책을 하거나 혼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도 선배교사가 되면 인턴교사들에게 잘해줘야지 라고 생각했던 날이었다.
푸른색 코끼리 표 밥솥을 보게 되면 그 날의 점심시간이 생각난다.
그날의 아찔함은 잊을 수가 없다.
계속 그날 밥솥의 플러그를 누가 뺏을까하고 용의선상에 떠오르는 인물들을 물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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